데이빗 아브라함 웨이스 랍비는 1955년 커너티컷 주 와터버리에서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중 한 분은 폴란드 루드즈 출신이며 다른 한 분은 벨라루스 민스크 출신이다. 부모님 가정은 임박한 초기 홀로코스트를 피하였다.
번창하는 정통 유대인 공동체 일원이었던 웨이스 가족은 그들의 모든 자녀들을 베이트 다비드 예시바에 입학시켰다. 그러므로 데이빗 아브라함은 유치원에서 7학년, 그리고 바르 미쯔바까지, 토라, 탈무드, 예식, 히브리어와 이스라엘 역사 교육을 받았다.
랍비 웨이스는 일반 중등 학교에 입학하여 영어와 심리학(Bucknell University 1977)을 전공하였으며, 대학원에서 교육학(University of Virginia 1981)을 전공하였다.
그 후 랍비 웨이스는 버지니아 공립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12년, 심리 상담사로 25년 총 37년 간 일하였다. 랍비 웨이스는 이 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 배경 및 신앙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사역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가 미래의 아내를 만난 것은 그가 강의 할 때였다. 거의 같은 시기 하나님께서 와니타 목사에게 기독교 신앙의 뿌리인 유대 뿌리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하셨다. 그녀는 예시바에서
항상 대충 넘어갔던 메시아에 대한 본질과 계획을 탐구하고자 하는 데이빗의 갈망을 자극하였다.
그 후 웨이스 랍비는 처음으로 브릿 하다샤를 자유롭게 읽었고, 와니타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베스 메시아 회당에 함께 참석하면서 랍비 조 로젠파르브와 의견을 나눴다.
웨이스 랍비는 ‘예슈아’의 선함과 유대성을 처음으로 발견하였지만 그의 가족 안에서 균열을 일으킬 것이기에, 그의 새로운 지식을 나누는 것을 주저하였다.
랍비 웨이스가 홀로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드러내 주시고 그의 믿음의 발걸음을 지지해 주실 것을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루아흐께서 그 방에 임재하시고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루아흐의 기쁨과 사랑이 랍비 웨이스에게 영감을 주셨을 때, “나는 더 친밀함 가운데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루아흐께서는 “베레쉬트에서 계시록까지 나의 토라를 읽고 모든 것을 진실로 믿어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루아흐께서는 웨이스 랍비에게 모든 절기와 유대인 상징 그리고 느비임의 모든 책들 가운데 예슈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남기고 떠나셨다.
1989년 루아흐의 방문 이후 랍비 웨이스의 심령은 변화되었다. 6개월 후 와니타와 결혼하였고 말씀을 사랑하는 자로서, 조나단(26세)의 부모로서, 베스 메시아에서 26년 간의 장로로서 그리고 8년간 말쿠트 하임 메시아닉 공동체의 공동 랍비로서 사역하였다.
랍비 웨이스는 2012 년부터 IAMCS 랍비 프로그램에서 공부하였고 2018년 랍비 임명 증서를 받았다. 랍비 샤피라와 만남 후 그는 유대인의 발자취를 따라 걸음으로써 온 세상이 그들의 메시아를 알 수 있다는 그들의 공통된 비전을 깨닫고 슈브와 아하바트 암미의 가족으로 그의 아내와 함께 기쁘게 합류하였다.